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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박은옥

경향[노래의 탄생] 정태춘 ‘5.18’

by 수락산 2020. 5. 18.

경향[노래의 탄생] 정태춘 ‘5.18’
오광수 부국장·시인, 2020.05.18 03:00 입력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 집 마당가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엔 아직도/ 칸나보다 봉숭아보다 더욱 붉은 저 꽃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그 꽃들 베어진 날에 아 빛나던 별들/ 송정리 기지촌 너머 스러지던 햇살에/ 떠오르는 헬리콥터 날개 노을도 찢고, 붉게.”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피가 끓는다. 군홧발 소리, 헬기의 굉음과 함께 시작된 노래가 끝날 때쯤이면 어느새 눈물이 흐른다. 정태춘에게도 ‘80년 광주’는 노래 인생을 바꾼 대사건이었다. 그해 5월4일 정태춘은 박은옥과 결혼했다. 제주도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그에게 예비군 비상동원령이 내려졌다. 예비군들이 모인 학교 운동장에서 풍문으로 광주 이야기를 들었다. 황석영의 광주보고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읽기 전까지 그는 ‘시인의 마을’로 MBC 신인가수상을 받은 포크가수였다. 뒤늦게 알게 된 광주의 진실은 그러잖아도 삐딱하고, 비판적이던 청년을 투사로 만들었다. 그는 ‘서정성’ 대신 ‘리얼리즘’을 장착한 노래를 무기로 ‘무대’보다는 ‘현장’을 누볐다.

이 노래는 1996년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열린 ‘안티 비엔날레’를 앞두고 만들어졌다. 정태춘은 ‘광주 비엔날레’에 반기를 든 이 행사에서 노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뭔가 의미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 며칠 밤을 새워 각종 5·18민주화운동 자료들을 섭렵하고 노랫말을 썼다. 당초 제목은 ‘잊지 않기 위하여’였다. 광주 비엔날레 대상작 제목이 ‘잊어버리기 위하여’였기에 그에 대한 반감을 담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5.18’은 현대사의 비극에 침묵으로 일관해온 대중음악계의 과오를 씻는 노래가 됐다. 그로부터 40년, 정태춘은 우리에게 ‘붉은 꽃’을 심을 수 있냐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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