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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공간

[스크랩] 시력의 한계

by 수락산 2006. 4. 9.

시력의 한계            
                            ---고 봉 진 ---
                  

어쩌다가 안경을 쓰고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이 생긴다.

의식적으로 되풀이해서 하는 짓이 아니다 보니, 그 때마다 나는 횐 머리카락이 부쩍 늘고 얼굴에 주름살이 이리저리 마구 패인 몰골을 발견하고 놀라곤 한다. 안경을 쓰지 않고 먼발치에서 거울을 바라볼 때는 그렇게 극명하게 드러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평소에는 잊고 있던 자신의 실상인 셈이다. 안경을 벗고 거울 속을 다시 들여다보면 상이 너무 가까워 어지럽다. 조금 거리를 띄워서 바라보면, 금방 본 것만큼은 늙어 보이지 않는 낮 익은 자신의 모습이 되살아 나 보인다.

 

처음 노안이 시작되었을 때의 일을 기억한다. 밤 늦도록 책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이 침침하게 흐려지며 그 때까지 잘 보이던 사전의 작은 글씨가 아물아물하니 잘 보이지 않았다. 책을 전등 가까이 가져가서 간신히 판독은 했으나 아무래도 평소와 같지 않아 책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눈과의 거리를 조금 띄우니 한결 잘 보이는 것 같았다. 혹시 원시가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그 다음날 안과를 찾아갔다. 아니나다를까 의사는 내 나이를 몇 번이나 다시 묻고 안압(眼壓)까지 재어 보는 등 여러 모로 면밀하게 진찰을 해본 뒤, 본인이 듣기엔 유감스럽겠지만 눈은 개인 차이가 심해서 삼십 대에도 노안이 오는 경우가 있다면서 곧 돋보기 안경을 써야 되겠다는 선언을 했다. 서른 여덟 나던 해다.

 

돋보기를 쓰고 책을 들여다보니 어지럽기도 하고 콧등이 안경 무게로 아프기도 하여 짜증이 났다. 어쩌다 음식상 앞에 안경을 쓰고 앉았다가 김으로 눈앞이 흐려질 때는 늙는다는 것이 무척 불편해지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때 정신적으로 받은 충격은 그 뒤 어느 날 내 머리에 횐 머리카락이 보인다고 어떤 눈 밝은 친구 하나가 방정을 떨었을 때보다 훨씬 강한 것이었다.

 

그러나 곧 책을 볼 때만 안경을 쓰는 일도 점점 익숙해져 별로 불편을 느끼지 않게 되자 시력의 감퇴라는 자연스러운 변화에 그리 불행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 뒤에 다시 조금 먼 거리까지 잘 안 보이게 되어 그린 위에서 퍼팅을 할 때 공과 그것이 굴러가야 할 선이 어지럽게 보이기 시작했을 때도 별 비애를 느끼지 않고 적당히 체념할 수가 있었다.

 

시력이 나쁘다고 본인이 불행하기만 하거나 그 주변에 언짢은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학업을 엉거주춤 마치고 이곳 저곳 직장을 찾아 얼쩡거리고 있을 때였다. 대학교 은사 한 분이 음악회 표 두 장을 주시며 어느 집 규수 한 분과 데이트를 할 기회를 마련해 주셨다. 음악회를 마치고 암묵리에 예정된 코스의 하나인 남산을 올라갔다. 그 때 그 규수가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고 있는 하늘을 가리키며 오늘 밤에도 많은 별들이 나와서 아름답게 비치느냐고 물었다. 자기도 그 별들을 빤히 보면서 일부러 나에게 물어보는 그녀의 의도가 복받치는 감흥을 좀더 극적으로 표현하려는 데 있는 줄 넘겨짚고 오히려 흥이 스러지려는 찰나에, 자기는 지독한 근시라 저 하늘의 별들이나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서울 도심의 불빛도,하나하나의 윤곽은 전혀 보이지 않고 안개 같은 몇 개의 커다란 빛 덩어리가 흐르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그제서야 만날 때부터 꿈꾸는 듯했던 그녀의 시선이 나를 보고 마음이 들뜬 탓이 아니라 천부의 약한 시력과 고운 마음씨를 나타내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좋고 또 그러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그녀의 이야기가 아주 신기했고, 그녀가 평소에 보고 있는 세계가 무척 환상적이고 아름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 집사람을 사귈 때의 일이다.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우연히 나를 만나면 좀체로 아는 체를 하지 않고 시치미를 뗐다. 미혼 여성의 당연한 수줍음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은 하면서도 얼마간 섭섭한 생각이 들어 조금 더 친숙해진 뒤 한번 따졌더니, "아직도 모르세요, 제 눈이 얼마나 근시인가를? 여러 사람과 섞여 있을 때는 목소리를 듣지 않고는 긴가 민가 확실치 않아서 주저하기 때문이에요." 했다. 그러고 보니 나 같은 사람을 언제나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매번 만나자고 할 때마다 만나 준 까닭을 알 것 같아 우쭐했던 기세가 얼마간 수그러들었지만 그 뒤로는 그녀 앞에 앉으면 태연히 코를 후벼도 될 정도로 마음이 편하고 친숙한 기분이 들었다. 그럭저럭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된 것도 이 세상 사람들의 시력이 한결같지 못한 덕을 본 셈인데, 결혼을 갓 하고서는 집사람이 걸핏하면 안경을 쓰고 나서는 바람에 방심을 하고 있다가 질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시력이 나빠서 덕을 보는 것은 그 상대만이 아니라는 간단한 사리를 자신도 눈이 나빠져서야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눈이 나쁘면 남의 약점도 눈에 잘 뜨이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자기의 결점 또한 별로 자각하지 않고 지낼 수 있게 된다. 이래서 세상 사(世上事)는 대체로 피장파장이기 마련이다.

 

매일 아침마다 거울을 바라보며 세수를 하고 넥타이를 매면서도 별로 염세적인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시들어 가는 외양과 함께 시력도 감퇴를 하여 안경 같은 인위적인 도구의 힘을 빌리지 아니하고는 그 변화를 그때그때 자세히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는 데 있는 것 같다. 손가락에 가시가 들어도 그 언저리가 아프기만 하지 가시 자체는 보이지 않는다. 답답해서 안경을 쓰면 가시는 보이지만 아직까지 싱싱할 줄 알았던 손등에 퍼렇게 돋아난 핏줄과 검은 반점들이 시야로 들어온다. 얼른 가시를 뽑고는 안경을 벗어 버린다.

 

집사람의 얼굴을 지나치게 가까이서 보려면 잘 보이지 않는다. 잘 보이는 거리를 두고 보면 세세한 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집사람이 얼마 전 자기도 드디어 횐 머리가 나기 시작했다고 탄식을 하는 소리를 몇 번 들었지만 아직도 내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돋보기를 대고 들여 다 보고 싶을 정도로 궁금하거나 심술굽지도 않다. 모든 것이 다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짜여진 자연의 조화라고 생각한다.

실상이 그러하지 아니한데 안 보고 지나면 뭐가 낫느냐고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만은 않다. 실상이라고 하지만 그것 자체가 애초에 모호한 개념이다. 어차피 사람의 보는 눈에는 한계가 있다. 현미경을 가지고 사람 얼굴을 보면 보통 사람의 시력으로 보는 것과 전혀 다른 형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그것도 배율이 크면 클수록 더욱 달라 보일 것이다. 어느 정도로 보이는 것이 그 사람의 참된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지, 쉽게 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개량하여 그 배율을 높임으로써 목성을 위시하여 여러 새 별을 발견하게 되고, 그 결과 천동설을 부인하고 지동설을 지지하는 새로운 천체 관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것은 같은 우주를 두고 어디까지 보고 얼마나 편리하게 설명하느냐의 차이지, 그것에 의하여 우주가 달라진 것은 아니었고, 그의 우주관이 전자망원경 시대인 오늘날까지 그대로 유효한 것은 아니다.

 

아직도 우주를 어디서 어디까지 어떻게 보아야 할는지 인간은 그 한계와 실상을 모른다. 이런 것을 더 따지고 들려고 하면 인식과 실체의 문제라는 인류의 영원한 아포리아에 부딪히고 만다.

시력이 각각인 사람들이 보고 있는 서로 다른 세계도, 그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럽고 진실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대로 그 속에 안주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좋다. 전원교향곡에서, 어쭙잖게 공연히 기를 쓰고 제르뜨뤼드의 눈을 뜨게 한 목사와 같은 우(愚)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1989. 12.)

출처 : 무주초등학교 54회
글쓴이 : 김연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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