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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공간

[스크랩] 벌 소제--이원수--

by 수락산 2006. 4. 9.
벌 소제----이원수--

좔 좔 좔 좔……
주룩 주룩 주룩 주룩……
지붕에서 마당에서 소리치고 뛰는비
처마에서 철석철석 울음소리 같은비
아버지가 논귀에서 종일비를 맞겠지
어머니가 모심으며 나를 기다리겠지
유리창에 비넘치는 컴컴한 저녁에
오늘도 벌소제다 나흘째나 벌소제
우리들은 날마다 꾸중 듣는놈
월사금 못냈다고 벌만 쓰는놈
너집은 십리길
내집은 재넘어
쏟아지는 이비에 냇물이 불었겠다
얘야 너도 점심굶고 눈이 둘니니
마루닦다 맥없이 늘어졌구나
교실에서 공차고 뛰여놀든 놈애들
소제당번 까지도 죄다돌려 보내고
기운없이 늘어진 우리에게만
며칠째 이짓이냐 어데 보아라
순돌아 너는 가거라 먼저
소제고 뭐고 두고 가거라
주린놈이 한기를 집어먹고서
겁낼것도 다없다 가거라 먼저.
확풀어진 두눈에 글성한 눈물
시퍼러진 잎술을 바르르 떨며
창대같은 빗속에 부대를 쓰고
책보도 내버리고 가던 순돌이-
터벅터벅 그래도 갔나했드니
가다말구 돌아와 자빠진돌이
비에젖은 부대쪽을 벗겨주면서
우리들은 참다못해 울고말았다.
아-아 오늘은 서럽구나
창대비 쏟아지는 늦은저녁을
앓고떠는 동무를 눕혀놓고서
얘들아 어쩌자고 보고만있니?
오- 우리 가슴에 우리 가슴에
어넘는 마음을 타는 마음을
입술을 악물고 둘러앉아서
×××× 약속하는 굳센 얼굴들……
순돌아 우지마라 우리가 있다
눈물을 거두어라 기운을 내라
좔 좔 좔 좔……
주룩 주룩 주룩 주룩……
유리창에 쏟아지는 저녁비소리를
우리는 이를물고 이를물고 듣는다
출처 : 무주초등학교 54회
글쓴이 : 김연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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